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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WCC 2013 선교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함께 생명을 향하여 : 기독교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
‘WCC 선교와 전도에 대한 새로운 확언’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2006년 세계교회협의회(WCC)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이후 새로운 에큐메니칼 선교 확언을 작성하기 위해 수고하며 공헌하였다. 이 새로운 성명서는 2013년 WCC 제10차 부산 총회에 제출될 것이다. 1961년 뉴델리에서 국제선교협의회(IMC)와 WCC가 통합된 이래로 지금까지 WCC의 선교와 전도에 대한 공식 성명서는 1982년에 중앙위원회에 의해 승인된 <선교와 전도 : 에큐메니칼 확언>(Mission and Evangelism : An Ecumenical Affirmation)이 유일한 것이었다. 이번 새로운 선교 성명서는 2012년 9월 5일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이 에큐메니칼 통찰의 목적은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 선교와 전도를 새롭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비전과 개념과 방향을 찾는 것이다. 이 성명서는 WCC 회원 교회들과 그 협력 선교기구들을 넘어 더 광범위한 대상에게 호소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만물의 생명 충만을 향해 함께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I. 함께 생명을 향하여 : 주제 소개

  1. 우리는 모든 생명의 창조자, 구속자, 유지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oikoumene)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고,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시기 위해 세상 안에서 일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생명이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성육신(요 3 : 16)으로 믿는다. 만물 가운데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 관심이며 선교이다(요 10 : 10).
    우리는 생명의 시여자(施與者)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은 생명을 지탱시키고, 힘을 주시며, 온 피조물을 새롭게 하신다(창 2 : 7, 요 3 : 8). 생명을 부정하는 것은 생명의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 살리기 선교로 초대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만물을 위한 풍요로운 생명의 비전을 증거하도록 권능을 주신다. 우리는 현재 우리를 하나님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생명 살리기 사역을 어떻게, 어디에서 분별할 수 있을까?
  2.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고, 성 삼위를 하나로 묶는 그 사랑은 온 인류와 창조세계로 넘쳐흐른다. 아들을 세상에 파송하신 선교사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부르시고(요 20 : 21) 희망의 공동체가 되도록 힘을 주신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생명을 축하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항하고 그것을 변혁시키라는 임무를 받았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산증인들이 되기 위해 “성령을 받는 것”(요 20 : 22)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성령의 선교를 새롭게 인식함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변화하는 다양한 세계 안에서 하나님선교를 어떻게 다시 상상해볼 수 있을까?
  3. 성령 안에 있는 생명은 선교의 본질이며, 우리가 왜 행동하는가, 어떻게 우리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의 핵심이다. 영성은 우리 삶에 가장 깊은 의미를 제공하며 우리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은 창조주로부터 오는 거룩한 선물이며 생명을 긍정하고 보살피는 에너지이다. 이러한 선교 영성은 사람들의 영적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변혁의 역동성을 갖는다. 우리는 어떻게 선교가 생명을 긍정하는 변혁적 영성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4.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만을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에게 부분적 구원을 주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창조의 모든 영역과 우리의 삶과 사회의 모든 측면에 좋은 소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선교를 우주적 차원으로 깨닫는 것과 온 생명,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확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지구의 미래가 명백하게 위협받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는 것과 그 위협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5. 기독교 선교 역사는 선교의 한 중심지로부터 “미전도 지역” 혹은 땅 끝까지 이르는 지리적 확장의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다수가 지구의 남반구와 동쪽에 살고 있거나 그곳에서 태생한 “세계화된 기독교”(World Christianity)라고 표현되는 급속한 교회의 지형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민은 기독교의 지형을 재형성하는 전 세계적이고 다방향적인 현상이 되었다. 강력한 오순절 및 은사운동들이 다양한 지역에서 출현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주목할 만한 세계 기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인구 비중의 변화”가 선교와 전도의 신학과 의제와 실천에 어떤 통찰을 주고 있는가?
  6. 선교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사회 특권층으로부터 소외계층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선교 대리자로서 자신들의 핵심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선교를 변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교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이러한 역할의 반전은 강한 성서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들을 택하셔서(고전 1 : 18 ‐ 31)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선교를 진전시키시고, 생명이 번성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주변을 향한 선교”에서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로 선교 개념의 전환이 일어난다면, 주변 출신 사람들의 독특한 공헌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의 경험과 비전이 오늘날 선교와 전도를 재구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7. 우리는 맘몬(物神, mammon)에 대한 숭배가 복음의 신뢰성을 위협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시장 이념은 글로벌 시장이 무한대로 성장하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선전을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신화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삶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삶까지, 인간성뿐만이 아니라 온 창조세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글로벌 시장 안에서 어떻게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포하고 또한 시장의 영을 이길 수 있을까? 글로벌 규모의 경제적 · 생태적 부정의와 위기의 한가운데서 교회는 어떠한 선교적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8. 모든 그리스도인들, 교회들, 그리고 개교회들은 구원의 좋은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울려퍼지게 하는 메신저로 부름 받았다. 전도는 담대하지만 겸손하게 우리의 신앙과 확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러한 나눔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선물이다.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는 참된 신앙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 안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방법 중 필수적인 전도에 대해 새롭게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세대를 향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선포할 수 있을까?
  9. 교회는 다종교, 다문화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새로운 통신기술의 발달도 세계인들이 서로의 정체성과 일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역적으로 또한 세계적으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 평화, 정의가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종사한다. 다원성은 교회들이 만나는 도전이다. 그래서 종교 간의 대화와 문화 간의 소통에 대한 진지한 참여는 피할 수 없다.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있는 세계 안에서 생명 살리기 선교를 공동으로 증언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에큐메니칼 신념을 가져야 하는가?
  10.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세상을 변혁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교회의 선교는 새 생명을 가져오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현존을 이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있는 분열과 긴장을 이겨내고 일치하여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하며,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믿고 하나가 될 것이다(요 17 : 21).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공동체적 교제(communion)로서 교회는 반드시 포용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세상에 치유와 화해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적이 되기 위해 어떻게 자신을 갱신할 수 있으며, 생명의 충만함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을까?
  11. 이 선교 성명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틀 안에서 성령의 선교를 이해하는 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발전을 강조한다. 이 성명서는 4가지 제목으로 그 내용을 다루었다.
    • 선교의 성령 : 생명의 숨결
    • 해방의 성령 :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 공동체의 성령 : 움직이는 교회
    • 오순절의 성령 : 모든 사람과 만유를 위한 복음

이러한 관점들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역동성(dynamism), 정의, 다양성, 변혁(transformation)을 오늘날 변화하는 기독교 지형 속에서 선교의 중심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들에 대해 오늘날 선교와 전도에 대한 10가지 확언을 응답으로 제시하면서 마칠 것이다.

II. 선교의 성령 : 생명의 숨결

성령의 선교

  1. 하나님의 영(ru’ach)은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셨고(창 1 : 2) 생명과 인간 숨결의 근원이 되셨다(창 2 : 7). 히브리어 성서에서 그 영은―지혜(잠 8장)와 예언의 능력을 주시고(사 61 : 1), 마른 뼈에서 생명을 일으키시고(겔 47장), 꿈꾸게 하시고(욜 2장), 성전에서 주님의 영광으로 개혁을 일으키시며(대하 7 : 1)―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2. 창조 때에 “수면 위를 운행했던” 동일한 하나님의 성령은 마리아에게 임하여(눅 1 : 35) 예수를 낳으셨다. 세례 받으실 때에 예수에게 권능을 주시고(막 1 : 10), 선교하도록 파송하신(눅 4 : 14, 18) 분은 성령이셨다.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은 영혼을 포기하셨다(요 19 : 30).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무덤의 냉기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다(롬 8 : 11).
  3. 부활 후,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공동체에 나타나셨고, 제자들을 선교하도록 파송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 : 21 ‐ 22). “위로부터 오는 능력”인 성령의 은사에 의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희망에 대해 증거하는 새 공동체를 이루었다(눅 24 : 49, 행 1 : 8). 초대교회는 일치의 성령 안에 함께 살면서 성도들 사이에 소유를 나누었다(행 2 : 44 ‐ 45).
  4. 창조세계 안에서 성령의 경륜의 보편성과 성령의 구속 사역의 특수성은 둘 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만유 안에서 만유의 주”가 되시는(고전 15 : 24 ‐ 28)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는 성령의 선교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령은 종종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에서 일하신다(눅 1 : 34 ‐ 35, 요 3 : 8, 행 2 : 16 ‐ 21).
  5. 성서는 성령의 선교적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다고 증언한다. 그중 하나는 성령이 그리스도에 완전히 의존적이고, 보혜사이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신 이후에 위로자와 변호자로서 오실 분이라고 강조한다. 성령은 선교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현존이라고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는 파송과 확장을 강조하는 선교학을 낳는다. 기독교 선교에 대한 성령론적 이해의 하나는 선교란 본질적으로 기독론에 근거하며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련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6. 또 다른 견해는 성령은 우리를 “온전한 진리”(요 16 : 13)로 인도하며,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시는(요 3 : 8) “진리의 영”이며, 온 우주를 끌어안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근원(source)이며, 교회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종말론적 모임(synaxis)이라고 선포한다. 이러한 두 번째 견해는 성도들이 성만찬의 집회에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미리 감지하고 맛보는 체험을 한 후에 평화롭게 (선교로) 나아가는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파송으로서 선교는 교회의 기원이기보다는 결과이며, “예전 후의 예전”이라고 부른다.
  7. 분명한 사실은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의 중심에 있는 사랑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능력을 끊임없이 선포하고, 모든 창조세계 안에 하나님의 역동적 관계하심을 지속적으로 확증하는 신앙적 증언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사랑에 응답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선교와 창조세계의 번성

  1.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흘러넘침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활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창조세계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은 서로 엮여 있다.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는 항상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 행위 안에 우리 모두를 포함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좁은 접근을 넘어서 모든 창조된 생명과 우리가 화해된 관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선교 유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처럼 땅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며, 처음부터 땅이 인간의 부정의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창 4 : 10).
  2. 그 중심에 창조세계를 품고 있는 선교는 생태정의,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그리고 땅을 존중하는 영성을 발전시키는 캠페인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 이미 적극적인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온 창조세계가 우리가 실천하도록 부름 받고 있는 화해된 일치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후 5 : 18 ‐ 19). 우리는 창조세계는 멸망되고 오직 영혼만 구원받는다고 믿지 않는다. 땅과 우리의 몸은 모두 성령의 은혜를 통해 변화되어야 한다. 이사야의 비전과 요한계시록이 증언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은 새로워질 것이다(사 11 : 1 ‐ 9, 25 : 6 ‐ 10, 66 : 22, 계 21 : 1 ‐ 4).
  3. 우리가 선교에 참여하고,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고,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은 상호 변혁적이기 때문에 함께 엮여 있어야 한다. 나머지 둘 없는 하나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이웃에 속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속할 수 있다고 잘못 믿는 개인주의 영성으로 일탈하게 될 것이고, 다른 피조물들이 상처받고 신음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단순히 기분 좋게 해주는 영성에 빠지게 될 것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와 관련해서 우리의 선교 안에 새로운 겸손을 수용하는 새로운 회개(metanoia)가 필요하다. 우리는 선교에 대해 인간이 다른 대상들을 향해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아니라 인간들은 모든 창조세계와 함께 공동체적 교제(communion)를 하면서 창조주의 사역을 찬양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여러 면에서 창조세계는 인간을 향해 임무를 수행한다. 예를 들면 자연세계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혜문서는 창조세계가 자신들의 창조주를 찬양한다고 확증한다(시 19 : 1 ‐ 4, 66 : 1, 96 : 11 ‐ 13, 98 : 4, 100 : 1, 150 : 6). 창조세계 안에서 창조주의 즐거움과 경이로움은 우리의 영성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된다(욥 38 ‐ 39장).
  5. 우리는 창조세계와 우리의 영적인 관계를 긍정하려고 하지만, 지구가 오염되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주의는 무한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지구 자원의 착취를 촉발했다. 인간의 탐욕은 지구온난화와 다른 형태의 기후변화에 원인이 되고 있다. 만일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땅이 치명적으로 손상된다면, 어떤 구원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피조세계의 나머지가 멸망하고 있는데 인간만 구원받을 수는 없다. 생태정의는 구원과 분리될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생명의 요구를 존중하는 새로운 겸손 없이는 구원이 올 수 없다.

영적 은사와 영분별

  1. 성령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고전 12 : 7, 14 : 26) 온 창조세계를 화해하기(롬 8 : 19 ‐ 23) 위해 나누어야 하는 은사들을 값없이 공평하게 주신다(고전 12 : 8 ‐ 10, 롬 12 : 6 ‐ 8, 엡 4 : 11).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는 영분별이다(고전 12 : 10). 우리는 피억압자들의 해방, 깨어진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창조의 회복을 포함하여 생명의 충만이 모든 차원에 긍정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분별한다. 우리는 또한 죽음의 세력과 생명의 파괴가 만연한 곳에서 악령들을 분별한다.
  2.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많은 영들이 있는 세계를 경험했다. 신약성서는 악령들, “섬기는 영들”(천사들, 히 1 : 14), “통치자들”과 “권세들”(엡 6 : 12), 짐승(계 13 : 1 ‐ 7), 그리고 선하고 악한 다른 권세들을 포함한 다양한 영들에 대해 진술한다. 사도 바울은 또한 일부 영적 투쟁(엡 6 : 10 ‐ 18, 고후 10 : 4 ‐ 6)에 대해 진술하며 악을 대적하라(약 4 : 7, 벧전 5 : 8)고 명령한다. 교회들은 세상에 파송되어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사역을 분별하고,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정의의 통치를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행 1 : 6 ‐ 8).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분별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종종 전복시키고, 우리를 한계 밖으로 이끌어내시고, 우리를 놀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응답할 것을 요청받는다.
  3.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은 내적이고,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이지만 또한 선교적인 노력에서는 우리를 바깥으로 이끌어간다. 성령에 대한 전통적인 상징과 명칭(불, 빛, 이슬, 샘, 기름 부음, 치료, 녹이기, 따뜻하게 함, 위로, 위안, 힘, 휴식, 씻음, 비추임)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과 친숙하다는 사실과 선교가 관심을 갖는 관계성, 생명, 창조세계의 모든 측면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다양한 상황과 순간들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만남의 공간으로, 그리고 중요한 투쟁 장소로 인도함을 받는다.
  4. 성령은 지혜의 영(사 11 : 3, 엡 1 : 17)이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요 16 : 13). 성령은 인간의 문화와 창의성을 고취시킨다. 그래서 각각의 문화와 상황(context) 안에 생명을 살리는 지혜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이 우리 선교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식민지 건설과 연결된 선교활동이 종종 지역 주민들의 문화를 폄하하고 그들의 지혜를 인정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생명을 긍정하는 지역의 지혜와 문화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하나의 선물이다. 우리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멸시와 조롱을 받아온 전통 속에 살아온 사람들의 진술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지혜는 창조세계 안에서 우리와 성령의 생명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또 창조세계 안에 하나님이 계시되는 방법들을 사고하도록 돕는 중요하고 새로운 방향(orientation)을 제공하기도 한다.
  5.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주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포함하는 성령의 열매(갈 5 : 23)를 맺으라고 교회를 격려하면서 이 말을 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사랑과 성령의 능력이 활동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변혁적 영성

  1. 진정성 있는 기독교적 증언은 우리가 선교에서 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어떻게 선교적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선교하는 교회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 안에 깊게 뿌리내린 영성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영성은 우리의 삶에 가장 깊은 의미를 제공한다. 그것은 삶의 여정을 자극하고 그것에 동기를 부여하고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것은 생명 충만을 위한 에너지이며, 생명을 부정하고 파괴하고 쇠약하게 하는 모든 세력과 권세와 제도에 저항하는 헌신을 요구한다.
  2. 선교 영성은 늘 변혁적이다. 선교 영성은 경제와 정치 안에 심지어 우리의 교회들 안에라도 생명을 파괴시키는 가치와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들에 저항하고 변혁을 추구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값없는 생명의 선물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우상숭배 수준의 거만함, 불공평한 제도, 독재정치, 현 세계 경제질서 속에 있는 착취와 대결하도록 한다. 경제와 경제적 정의는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의 핵심에 닿아 있기 때문에 항상 신앙의 문제가 된다.” 선교 영성은 맘몬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경제에 봉사하고, 개인 탐욕을 만족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의 식탁에서 생명을 나누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권력자들의 자기 이익에 도전 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변화를 추구하는 동기를 부여해준다.
  3.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 : 24)고 말씀하셨다. 무한성장정책은 글로벌 자유시장을 지배함으로써 가난한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끝없는 희생을 요구하고 대안은 없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고, 우상숭배에 해당하는 완전한 충성을 요구하면서, 부와 번영을 창출해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거짓 약속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끝없는 착취를 통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부(富)가 무제한 성장하도록 보호하는 맘몬의 글로벌 제도이다. 이러한 탐욕의 탑은 하나님의 온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러한 맘몬의 제국에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4. 변혁은 파스카 신비의 빛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 후 2 : 11 ‐ 12). 억압과 차별과 고통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된다(고전 1 : 18). 심지어 우리 시대에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 생명을 지불함으로써 제자도의 희생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킨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순교에 직면해서도 그들의 신념에 따라 살도록 용기를 준다.
  5. 십자가는 선교와 교회 안에 권력 남용과 악용에 대한 회개를 요청한다. “교회와 세계 안에서 우리를 분열시키고 괴롭히는 힘의 불균형과 불안정으로 인해 혼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회개하며, 권력 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권력 구조를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성령은 약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력해진 사람을 위해 강자가 스스로 자기의 특권을 비우도록 도전하신다.
  6. 성령 안에서 생명을 경험하는 것은 생명을 충만하게 맛보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계속 유지시키는 만물을 기뻐하고, 절망과 염려(시 23편, 사 43 : 1 ‐ 5)의 강을 건너기 위해 연대의 행진을 하면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증거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선교는 성령께서 우리와 만나 삶의 모든 단계에서 도전하신다는 깨달음을 주고 또한 우리의 개인 혹은 집단의 여정(旅程)의 장소와 시간에 새로움과 변화를 주신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 안에 자극한다.
  7. 성령은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결코 길들여지거나 “관리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령의 놀라운 활동 가운데에는 주변으로 여겨지는 장소들로부터 배척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들이 있다.

III. 해방의 성령 : 주변으로부터의 선교

  1.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과 지혜 가운데 이미 창조하신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것은 억압된 자를 해방시키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오고 있음을 선포하기 위함(눅 4 : 16 ‐ 18)이라고 선언하시며 사역을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시대에 주변부화된 사람들과 함께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의 선교를 완수하시려 두루 다니셨는데, 그것은 온정주의적 자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황이 세상의 죄성을 입증했고, 그들의 생명을 향한 갈망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부정하는 모든 것에 대면하여 변혁하기 위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끌어안았다. 그것들은 거대한 빈곤과 차별과 비인간화를 가져오고, 유지시키며, 사람과 땅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문화와 제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는 권력의 역학, 글로벌 제도와 구조, 그리고 지역적 상황의 복잡함을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선교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계속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연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방법들을 통해 이해되거나 실행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는 만물에게 생명의 충만함이 넘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사명이 선교라는 것을 재구상하도록 교회를 초대한다.

왜 주변부 사람이며 주변부화인가?

  1. 주변부로부터의 선교는 삶과 교회와 선교 안에 있는 부정의에 대항하려고 한다. 그것은 오직 힘 있는 자가 약한 자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특권 있는 자가 소외된 자에게 선교할 수 있다는 인식을 거부하고 대안적인 선교운동이 될 것을 추구한다. 그러한 접근방법들은 억압과 주변부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부로부터의 선교는, 중심부가 되는 것이 자기 권리와 자유와 개성이 긍정되고 존중받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주변부에 사는 것은 정의와 존엄에서 배제되는 현실임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주변부에 사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은 대변해줄 자들이 있고 중심부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연약한 지위를 가지고 살아가는 주변부 사람들은 종종 어떠한 특권층세력들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 자기들의 투쟁의 절박성을 가장 잘 인식할 수 있다. 특권층 사람들은 주변부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투쟁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2. 주변부 사람들은 능력개발이 박탈되고, 기회와 정의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받았으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 대신 주변부 사람들은 삶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통해 적극적인 희망과 집단적 저항의 담지자들, 그리고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믿고 기다리는 인내의 담지자들이 된다.
  3. 선교활동의 현장(context)은 선교의 범위와 성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든 선교 사역자들의 사회적 활동 장소는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선교학적 성찰을 할 때 선교적 전망을 형성하는 서로 다른 가치 지향성(value orientations)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선교의 목적은 단순히 사람들을 주변부로부터 권력의 중심부로 이주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주변부에 있게 함으로써 중심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과 맞서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히려 권력 구조를 변혁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4. 과거와 현재에 주요한 선교적 표현들은 종종 사회의 주변부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 표현들은 일반적으로 주변부 사람들을 선교활동의 적극적 행위자가 아니라 수혜자로 보아왔다. 이런 방식으로 수행된 선교는 종종 억압적이고 생명을 죽이는 제도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특권층 주류와 제휴되어 있었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경제적 · 문화적 · 정치적 제도에 대한 도전을 막아왔다. 주류에서 출발하는 선교는 온정주의적 태도와 우월의식이 동기로 작용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선교는 기독교와 서양문화를 동일시했고, 그러한 주변부화로 희생된 사람들의 온전한 인간성을 부정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5. 주변부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심은 사회, 문화, 문명, 국가, 심지어 교회까지도 모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일에 실패하였다는 사실이다. 주변부화와 억압을 일으키는 불평등의 근거에는 부정의가 있다. 정의를 향한 하나님의 열망은 하나님의 본성과 주권과 분리되지 않는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신 10 : 17 ‐ 18). 그러므로 모든 선교활동은 모든 사람의 인격적 존재와 땅의 성스러운 가치를 지켜야 한다(참조 사 58장).

투쟁과 저항으로서 선교

  1.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확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구체적인 실재와 상황(context) 속에서 행동하시고, 정의와 평화와 화해를 통해 온 땅의 생명 충만을 추구하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지속되는 해방과 화해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착취하고 노예화하는 마귀들을 분별하고 가면을 벗기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가부장적 이념을 해체하고, 원주민들을 위한 자결권을 옹호하며, 인종주의와 카스트 제도의 사회적 뿌리에 도전하는 것을 수반한다.
  2. 교회의 희망은 약속된 하나님 통치가 성취되는 것에 근거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 사이에 관계를 바르게 회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비전은 비록 종말론적인 실재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만, 종말 이전 시기 안에서 일어나는 현재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도록 우리에게 깊은 활력과 정보를 준다.
  3.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고(막 10 : 45),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눅 1 : 46 ‐ 55), 상관성, 상호관계와 상호 의존성의 특징을 지닌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만물을 위한 하나님의 뜻인 생명의 충만함을 방해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할 것을 요구하고 또한 정의, 인간존엄, 생명의 대의를 지키는 운동에 참여하고 솔선하는 모든 사람과 흔쾌히 함께 일할 것을 요구한다.

정의와 포용성을 추구하는 선교

  1.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좋은 소식은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계가 실현된다는 약속과 관련된다. 포용성은 인류와 창조세계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창조세계가 상호 인정하고 또한 각자의 성스러운 가치에 대해 상호 존중하고 가치를 지탱하는 정의로운 관계를 양육시킨다. 그것은 또한 각 사람이 공동체의 삶 속에 온전하게 참여하도록 돕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공동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장벽들을 극복해냄으로써 이러한 희망의 근거를 제공하는 평생의 임무를 갖는 것이다(갈 3 : 27 ‐ 28). 그러므로 인간을 해치는 어떤 종류의 차별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2. 예수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마 20 : 16). 교회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철저한 호의를 베푸는 범위만큼, 교회는 하나님 통치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사 58 : 6). 교회가 자기중심주의를 삶의 방법으로 택하는 것을 비판하는 범위만큼, 하나님 통치가 인간의 실존에 스며드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교회가 사적인 상호작용은 물론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제도 안에서 신체적 · 심리적 · 영적인 표명을 할 때 폭력을 포기하는 만큼,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하나님 통치를 증언하는 것이다.
  3.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교와 돈과 정치권력은 전략적 동반자들이 되어 있다. 비록 우리의 신학적 · 선교학적 대화는 가난한 사람과 연대하는 교회의 선교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때때로, 실천적으로 부자들과 밥을 먹으며, 교회 관료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확보를 위해 로비하면서 권력의 중심부에 거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특별히 특권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 무엇인지 성찰하도록 도전한다.
  4.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 긍정의 계획을 진술하도록 부름받았다. 그것은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가치와 관습을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차별의 형태 안에 있는 죄성을 인정하고 부정의한 구조를 변혁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소명으로 인해 교회에 대해 확실한 기대가 생겨나게 된다. 교회는 그 서열구조 안에 억압적인 권력들이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 대신 대항문화공동체(counter ‐ cultural community)로서 활동해야 한다. 신구약성서 안에서 언약 공동체를 향한 명령은 “너희 중에서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마 20 : 16)는 언명으로 특징지어진다.

치유 및 온전성으로서의 선교

  1.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와 삶의 온전성을 향한 행동은 선교의 중요한 표현이 다. 치유는 예수 사역의 중심적 특징일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역을 지속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의 특징이기도 하다(마 10 : 1). 치유는 또한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하나이다(고전 12 : 9, 행 3장). 성령께서는 한편으로 기도, 목회적 돌봄, 전문적 보건을 포함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고난의 근거 원인들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 부정의를 일삼는 구조의 변혁 및 과학적인 탐구를 포함하는 생명 양육의 선교를 위하여 교회에게 능력을 주신다.
  2. 건강은 육체적 · 정신적 복지 이상의 것이고, 치유는 본래 의학적인 것이 아니었다. 건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교회의 성서적 · 신학적 전통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인간을 다차원적 통일체로 보고 몸 · 혼 · 정신을 상호 관련적, 상호 의존적으로 본다. 그래서 이러한 건강 이해는 개인적 특성과 온전성의 사회적 · 정치적 · 생태학적 차원을 긍정한다. 건강은 온전성이라는 의미에서 현재에는 실질적 가능성이고, 종말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조건이 된다. 온전성은 정(靜)적인 조화의 균형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과 창조세계가 함께 공동체적인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부정의는 공동체 건설을 방해하는 장벽이고 그러므로 온전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에이즈와 면역결핍증을 포함하여 의학적 조건이나 장애를 근거로 한 차별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것이다. 방치되었던 우리의 개인적 · 집단적 삶의 모든 부분이 포용될 때, 그리고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사랑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서 그러한 온전성이 경험될 수 있고, 우리는 이 땅 위에서하나님 통치의 징표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3. 사회는 장애나 질병을 죄의 결과나 혹은 해결되어야 할 의학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의학적 모델은 개인의 “결함”으로 여겨지는 것을 교정하거나 치료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주변부화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족”하거나 “병든” 존재로 보지 않는다. 성서는 많은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는 다양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평등하고 중요한 존재로 여기며 치유하셨고, 공동체 구조 안에 그들의 정당한 자리를 회복시켜 주셨다. 치유는 결함으로 이해되는 그 어떤 것을 교정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물론 온전해지기 위해서 손상된 부분들은 교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치료를 고정적으로 보는 것은 성서적 관점을 진척시키기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관점이다. 선교는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와 사회의 삶 속에 온전하게 참여하도록 촉진시켜야 한다.
  4. 기독교 의료선교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질 높은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만인 건강의 성취라는 목적이 있다. 종합적인 의미에서 볼 때, 교회는 건강과 치유에 참여할 수 있고 현재에도 참여하고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교회는 진료소와 선교병원들을 세우고 지원하며, 상담하고, 보살피는 단체들과 건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역 교회들은 병든 교우들을 방문하기 위한 모임을 조직할 수 있다. 치유과정은 병자와 함께하는 기도 혹은 병자를 위한 기도, 고백과 용서, 안수, 기름 바르기, 카리스마적인 영적 은사를 사용하는 것(고전 12장)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이용하여 치유자가 영광을 누리거나 거짓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승리주의적 치유집회 등 부적절한 예배 형태는 사람들에게 깊은 해악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경우처럼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으로 일어나는 치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5. 불완전한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고통 속에 신음하며 구속을 바라는 창조세계의 일부로서 기독교 공동체는 희망의 징표가 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한 표현이 될 수 있다(롬 8 : 22 ‐ 24). 성령은 여러 방법으로 정의와 치유를 위해 일하시며 그리스도의 선교를 구현하기 위해 부름받은 특별한 공동체 안에 거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IV. 공동체의 성령 : 움직이는 교회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생명

  1. 교회의 생명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 : 8). 선교란 창조세계와 구속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초대하신다”(Caritas Christiurget nos). 이러한 공동체적 교제(communion)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같은 운동을 하는 형제자매들을 향해 우리의 마음과 삶을 개방시킨다(고후 5 : 18 ‐ 21).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교회는 모든 사람과 생명체를 위해 좋은 소식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사랑의 나눔은 모든 선교와 전도의 원천이다.
  2. 성령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그리고 모든 문화와 상황을 위해 온 인류에게 주시는 영감 있는(inspirational) 선물이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성령의 강력한 현존은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 충만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에 내주(內住)하시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시고 그 성도들에게 그러한 목적 실현에 참여하도록 힘과 자격을 주신다.
  3. 교회는 역사 안에서 항상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신학적 · 경험적으로 선교를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기원과 목적에 있어서 교회와 선교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교회와 선교의 관계는 매우 친숙한데 그것은 선교하는 교회에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또한 교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과 동시에 교회 안에 성령을 불어넣으셨다(요 20 : 19 ‐ 23). 그러므로 마치 불이 타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 만일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더는 교회가 아니다.
  4. 하나님 선교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래로부터”(from below)의 교회론적 접근에 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선교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가 교회를 소유하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들을 확장하는 계획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구현하는 보편적 교회(the Church)의 계획이다. 이러한 이해로부터, 교회의 사도성에 대해 역동적인 이해가 나온다. 사도성은 이어지는 시대들을 통해 교회의 신앙을 보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직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교회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선교적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의 일치

  1.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선교에 참여하는 중요한 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속한 형제와 자매가 된다(히 10 : 25). 교회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하나의 포용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말씀과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그 존재 안에서 장차 도래할 하나님 통치의 비전을 미리 맛보고 증언한다. 교회는 성도들의 함께 모임(coming together)이고 평화 가운데 나아감(going forth)이다.
  2. 신학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선교와 일치는 서로에게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1961년 국제선교협의회(IMC)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통합된 것은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경험은 선교와 교회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용기를 준다. 그러나 이 목적이 아직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기(世紀)에 교회가 진정 선교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신선한 시도들을 하면서 이 여정을 지속해가야 한다.
  3. 오늘날 교회들은 여러 면에서 자신들이 아직 하나님 선교의 충분한 구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는 선교와 교회를 분리하는 의식이 여전히 우세하다. 선교 안에 온전하고 실질적인 일치가 부족해서 이 세상 안에 하나님 선교가 성취되는 것에 대해 진정성과 신뢰성이 여전히 손상되고 있다. 주님은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요 17 : 21). 이처럼 선교와 일치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교회와 일치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더 광범위한 일치 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온 창조세계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해야 한다.
  4. 자유시장경제의 대단히 경쟁적인 환경은 불행하게도 남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기를 추구하도록 교회들과 유사교회(para ‐ church)운동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것은 심지어 한 교회에 소속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교파 소속을 바꾸라고 설득하는 공격적인 전술을 채택하도록 할 수도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타인 존중의 태도와 공존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권력과 돈이 아니라 자기 비움(kenosis)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다. 선교에 대한 이러한 겸손한 이해는 우리의 선교 방법들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본성이며 본질이 된다. 교회는 하나님 선교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 선교적 교회는 자기 비움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5. 다양성을 지닌 기독교 공동체는 서로 존경하고 책임지는 복음전도 형태를 포함하는 동반자 관계와 협력정신을 가지고 공동 증언하는 방법을 확인하고 실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공동 증언이란 “비록 분열되었지만 교회들이 특별한 공동노력을 통하여, 이미 그들이 함께 나누고 경험한 하나님 주신 진리와 삶의 은사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6. 교회의 선교적 본성은 또한 교회들과 유사교회(para ‐ church) 구조들이 더 가깝게 관계할 수 있는 길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MC와 WCC의 통합은 교회일치와 선교에 대해 사고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 일치 논의들이 제도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온 한편, 선교 단체들은 선교에서 유연성과 보완성(subsidiarity)을 나타냈다. 유사교회운동들은 교회론적 지주(支柱)를 통해 책임성과 방향성을 찾는 반면, 교회들은유사교회 구조들을 통해 자신들의 역동적 · 사도적 특성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
  7. 협력과 일치에 솔선을 보였던 1910년 에든 버러 선교대회의 직접 계승자인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교회들과 선교 단체들이 선교에서 일치(unityin mission)를 표현하고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도록 하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WCC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 CWME는 세계 도처의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복음주의, 오순절, 토착교회들로부터 나오는 선교와 일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만날 수 있었다. 특별히 WCC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가까운 실무관계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복음주의자들과의 협력 증진은, 특히 로잔세계복음화운동(LMWE)과 세계복음주의연맹(WEA)과의 관계는 일치 안에 선교(mission in unity)라는 주제에 대해 에큐메니칼 신학적 성찰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는 온 교회(the whole church)가 온 세계 안에(in the whole world)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을 증언해야 한다는 공동의 관심을 함께 가지고 있다.
  8. 일치의 영이신 성령은 또한 다양성 속에 일치를 이루기 위해 주도적이고 건설적으로 사람들과 교회들을 연합시키신다. 성령은 포용적이고 상호 책임적인 공동체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안전하고 적극적인 육성환경(nurturing environment)에서 서로의 차이를 탐구하도록 사람들에게 필요한 역동적 상황과 자원들을 공급하신다.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교회에 힘을 주신다.

  1. 하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에 내주하시면서 그 성도들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신다. 그래서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은 요구에 근거한 긴급한 내적 충동이 되고(고전 9 : 16),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성 있는 삶을 평가하는 시험과 척도가 되기에, 예수께서 가져오신 생명 충만을 나누도록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는 일은 특별한 개인이나 전문 단체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당연한 것이다.
  2. 인류와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풍부한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 메시지를 신뢰성 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 장소에서 한 목소리를 내고, 공동으로 증언하고, 우리 안에 있는 희망(벧전 3 : 15)의 이유를 설명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그래서 교회들은 풍요로운 공동 선언들을 발표해왔는데, 그 선언들의 일부는 연합하는 교회(uniting) 혹은 연합된 교회(united)들로부터 나타났고 또한 대화 중 일부는 하나의 살아 있는 치유와 화해의 유기체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 회복을 추구하였다. 성령의 사역을 치유와 화해 안에서 재발견하는 일은, 오늘날 선교신학의 중심이 되었는데, 중요한 에큐메니칼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교회들 사이에 “가시적” 일치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구조 차원에서만 일치가 추구될 필요는 없다.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선교의 대의에 도움이 되는 것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선교 안에 서의 일치는 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위한 바탕이 되며, 교회 직제를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 일치를 성취하려는 시도는 정의를 찾으라는 성서적 요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정의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의 소명은 때로는 침묵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거짓된 일치를 타파하는 데 관련된다. 진실한 일치는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성과 존경을 수반한다.
  4. 오늘날 광범위한 세계적인 이민 상황은 교회들이 아주 실천적인 방법으로 일치에 헌신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 : 2)는 말씀을 듣고 있다. 교회들은 이민 공동체를 위한 피난처가 될 수 있고 또한 문화 간의 교류를 위해 의도적인 중심지가 될 수도 있다. 교회들은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장벽을 넘어서 하나님의 선교를 섬기기 위해 하나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고, 다양성 안에서 공동 증언의 표현으로서 다문화 목회와 선교를 창조해내야 한다. 이것은 이민정책과 관련해서 정의를 옹호하고,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차별에 대해 저항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여성, 어린이, 미등록 노동자들은 모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 가운데 가장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여성들은 또한 자주 새로운 이민정책의 첨단에 놓여 있다.
  5. 하나님의 환대는 문화적으로 우월한 집단들을 주인으로, 이주민과 소수자들을 손님으로 보는 우리의 이층구조 개념을 극복하도록 요청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환대 안에서 하나님이 주인이고, 우리는 모두 겸손과 상호성을 가지고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도록 성령에 의해 초대받는다.

개교회들 : 새로운 창의적 주도성

  1. 하나의 교회(the one Church)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만, 각 개교회(local congregation)가 자기 성도들의 상황적 현실에 응답하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들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변화된 세계는 개교회들이 새로운 주도권을 발휘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속화되고 있는 북반구에서 “신수도원주의”(new monasticism),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 “프레쉬 익스프레션”(fresh expression)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상황적 선교(contextual mission)가 교회들을 재정의하고 재활성화하고 있다. 상황에 알맞게 교회가 존재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적절하다. 북반구에 있는 일부 교회들은 대중술집(pubs), 커피숍, 개조된 영화관에 서 모이고 있다. 온라인을 교회의 삶에 끌어들이는 것은 비선형적(non ‐ linear) · 시각적 · 실험적 방식으로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2. 사도행전의 초대교회같이 개교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인이 되는 것을 수용하거나 거절하는 것은 개교회에 대한 그들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있고, 그것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변혁의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개교회들이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선교의 성령에 의해 감동을 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개교회들은 선교의 전선들이며 주요 대리자들이다.
  3. 예배와 성례전은 변혁적 영성과 선교를 교육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성서를 상황에 맞게 읽는 것은 개교회들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와 증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선교를 삶으로 실천할 때에만 온전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개교회들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자신들의 편안한 지대 밖으로 나가야 하고 경계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4. 오늘날 개교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문화적 · 인종적 경계들을 넘어가도록 강조하고, 문화적 차이를 성령의 선물로 긍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민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들이 자신들을 새롭게 재발견하도록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민은 지역 차원에서 문화 간교회들(intercultural)과 다문화교회들(multicultural)을 창립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교회는 상이한 문화를 가진 공동체들이 함께 모이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고, 우리 시대에 상황에 알맞게 문화 간 선교를 표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포용할 수 있다.
  5. 개교회들은 또한 과거에는 결코 불가능했던 글로벌 연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매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교회들사이에 영감(靈感) 있고 변혁적인 연결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위험이 없지는 않지만 혁신적인 가능성을 제공한다. 점점 대중화되는 단기 “선교여행”은 전 세계의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 사이에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일부의 경우에 가난한 지역 교회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거나 현지 교회들을 전부 무시하는 경우가 발행하기도 한다. 그러한 여행들 도처에 위험과 염려가 있지만 다양한 문화적 · 사회경제적 상황에 노출되는 기회는 그 여행자가 자국 공동체로 돌아갔을 때 장기 사역을 결정하도록 인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지체 안에서 온 교회(the whole church)를 세우는 영적 은사들을 실행하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다(고전 12 ‐ 14장).
  6. 정의를 옹호하는 일은 국회나 중앙 관청만의 특권이 아니라 지역 교회들의 참여를 요구해야 하는 증언의 한 형태이다. 예를 들면, WCC의 폭력 극복 10년(WCC Decade to Overcome Violence, 2001 ‐ 2011)은 국제에큐메니칼평화회의(International Ecumenical Peace Convocation)에서 “교회들은 인권, 젠더 정의, 기후 정의, 일치와 평화를 해칠 수도 있고 진척시킬 수도 있는 일상의 선택들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탄원으로 결론을 맺었다. 지역 교회들이 일상의 삶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데 명분과 동기를 제공한다.
  7. 교회는 각 지역의 정치적 ·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봉사(diakonia)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을 증언하면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지닌 믿음과 희망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는 봉사를 통해 종 되신 주님의 길을 따르면서 봉사를 통해 하나님 선교에 참여한다. 교회는 봉사의 힘이 지배의 힘보다 우월함을 나타내고, 생명을 위한 가능성을 육성하며, 하나님 통치의 약속을 설명하는 봉사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변혁하는 은총을 증언하는 봉사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8.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 깊이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의 외적인 특성이 전도로 나타나게 된다.

V. 오순절의 성령 :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소식

복음화로의 부름

  1. 증언(martyria)은 온 세계 안에 있는 온 인류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한다는 구체적인 전도 형태를 취한다. 증언의 목적은 세상의 구원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전도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총에 대해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 그리고 부활의 중심성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전하는 선교활동이다. 그것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과 이 좋은 소식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하도록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2.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흘러넘치는 것이다.” 오순절에 제자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행 2 : 4, 4 : 20). 전도는 선교의 서로 다른 차원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과 제자도를 향한 개인적 회심으로의 초대”를 포함하는 복음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의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령은 어떤 사람들을 전도자로 부르시지만(엡 4 : 11),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있는 희망을 설명하도록 부름받았다(벧전 3 : 15). 개인들뿐만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전도하도록 부름받았다(막 16 : 15, 벧전 2 : 9).
  3. 오늘날 세계는 공동체를 치유하고 양육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파괴하고 잔인하게 대하는 종교적 정체성과 신념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개종(proselytism)이 전도를 실행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령은 사람들의 설교와 복음의 증언과 동역할 것을 선택하시지만(롬 10 : 14 ‐ 15, 고후 4 : 2 ‐ 6 참조), 새 삶을 창조하고 거듭나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다(요 3 : 5 ‐ 8, 살전 1 : 4 ‐ 6). 우리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 수단이나 권력의 악용을 통해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에 때때로 전도가 왜곡되었고 그 신뢰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상황에서, 억압된 정체성을 가지고 비인간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을 그대로 유지시키려는 지배 집단들의 의도에 의해 강제 회심(conversions)에 대한 고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4. 전도는 우리의 믿음과 확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 전통을 고수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들을 제자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눔은 신뢰와 겸손을 가지고 할 때, 그리고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는 표현으로 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면서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그들과 복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혹은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정직성에 대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에 대해 나누고 소개하는 것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은 없다.
  5. 전도는 회개, 믿음과 세례로 인도한다. 죄와 악과 대면하면서 진리를 듣는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을 요구한다(요 4 : 28 ‐ 29, 막 10 : 22 참조). 그것은 태도, 우선순위, 목표의 변화를 수반하는 회심을 촉발한다. 그 결과 전도는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 병든 자들의 치유, 억압당하는 자들과 온 창조세계의 해방을 가져온다.
  6. “전도”는 선교의 서로 다른 차원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과 제자도를 향한 개인적 회심으로의 초대”를 포함하는 복음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의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교회들 안에는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 상황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시는지에 대해 다른 이해가 있다.
  7. 일부 사람들에게 전도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개인적 회심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는 억압받는 사람과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함으로 기독교적 증언을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전도를 하나님 선교의 한 구성요소로 생각한다. 서로 다른 기독교 전통들은 선교와 전도의 측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leitourgia)가 증언(martyria), 봉사(diakonia), 코아노니아(koinonia)와 불가분리하게 연결되는 지역교회의 삶 속에 근거를 둔 전도를 이해하도록 성령이 우리 모두를 부르신다고 여전히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전도

  1. 전도는 말과 행동으로 좋은 소식을 나누는 것이다. 언어적 선포 혹은 복음 설교(kerygma)를 통한 전도는 아주 성서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도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언어적 진술과 보이는 행동이 결합되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목적을 증언하게 된다. 전도는 일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을 증명하고(요 13 : 34 ‐ 35), 반면 분열은 복음에 방해가 된다(고전 1장).
  2. 생명의 충만함을 일으키기 위해서 성령의 동역(同役)을 받아 자신의 지역 현장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충성되고 겸손한 봉사의 본보기들이 역사 속에 있고 현재에도 있다. 또한 자신의 문화적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선교사로서 살며 사역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겸손과 상호성과 존중을 가지고 일을 했다. 하나님의 성령 또한 변혁을 가져오기 위해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셨다.
  3. 유감스럽게도 이따금 복음을 성육화하기보다 배반하는 방식으로 전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선교란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긍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름받았고(막 10 : 45, 마 25 : 45 참조) 착취나 어떤 형태의 미끼 사용도 없어야 한다. 어떤 모양의 기독교적 생활을 택할 것인지 우리가 결정하는 오늘의 개인주의적 상황에서, 전도를 마치 “상품”을 사고파는 것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만인을 위한 예수의 복음이 자본주의적 용어들 아래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거절하신다. 성령은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에게 회심과 변혁을 일으키고 만인을 위한 생명의 충만함을 선포하도록 인도하신다.
  4. 진정성 있는 전도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겸손과 존경에 근거하고 있으며 대화의 맥락에서 잘 이루어진다. 전도는 말씀과 행위 속에서 복음의 메시지와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촉진시킨다. “연대 없는 전도는 없다. 도래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메시지를 공유하지 않는 기독교 연대는 없다.” 그러므로 전도는 개인 간 관계성 및 공동체 관계성을 건설하도록 고무시킨다. 그러한 진정성 있는 관계성은 종종 지역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잘 육성되고, 지역의 문화적 상황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증언은 말뿐만이 아니라 현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신앙을 공개적으로 진술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단순하게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마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서로 다른 종교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기독교 증언에 관한 다양한 해석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진정성 있는 전도는 다음의 진술처럼 항상 생명을 긍정하는 가치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세계교회협의회, 교황청 종교 간 대화촉진평의회, 세계복음주의연맹의 공동성명서 <다종교세계에서의 기독교의 증언 : 행동지침>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 심리적 혹은 사회적인 권력 남용을 포함하는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에 의해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차별과 억압을 거부한다.
    • 보복이나 협박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 없이 신앙을 준수하고 고백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정의와 평화와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의 선을 증진하는 일에 서로 존중하며 연대한다.
    • 모든 사람과 모든 인류 문화를 존중한다. 반면, 우리 자신의 문화 안에 가부장제도, 인종차별제도, 카스트 제도 등 복음에 의해 도전을 받아야 하는 요소를 분별한다.
    • 거짓 증언을 포기하고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이해하기 위해 들어야 한다.
    • 개인과 공동체가 결심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분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
    • 공동선을 위한 깊은 상호 이해, 화해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다른 종교인들 혹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정립한다.
  6.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 도전하는 개인주의, 세속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다른 이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복음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지만, 기만과 부정의와 억압을 일삼는 세력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전도는 또한 그 영향력의 범위만큼, 희망과 사랑 안에서 권력을 향해 진리를 말하는 것을 포함하는 예언자적 소명이다(행 26 : 25, 골 1 : 5, 엡 4 : 15). 복음은 해방적이고 변혁적이다. 복음선포는 정의롭고 포용적인 공동체를 창조해내려는 목적을 지닌 사회변혁을 포함해야 한다.
  7. 악과 부정의에 저항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때때로 억압과 폭력에 직면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고난과 박해, 심지어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진정성 있는 전도는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비우신(빌 2 : 5 ‐ 11)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연약하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로마의 박해 아래서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언이 된다. 예수는 그를 따르라는 부름과 영원한 구원을 그러한 자기부인(self ‐ denial)과 연결시키셨다(막 8 : 34 ‐ 38).

전도, 종교 간의 대화와 그리스도인의 현존

  1. 오늘날 세계의 다원성과 복잡성 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다른 많은 종교와 이념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께서 기쁨과 생명의 충만함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 전통들 안에서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진정성 있는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선교의 동반자로 만든다.
  2. 대화는 생명을 긍정하고 창조세계를 보전하는 관점에서 우리의 공동의 삶과 목표를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종교적 차원에서 대화란 우리보다 앞서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그들과 함께 현존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를 가지고 시작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그곳에 계시기에(행 17장),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을 운반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재(先在)하신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다. 대화는 양편의 각자가 개방적이고, 참을성 있고, 존중하는 태도로 모든 것을 테이블로 가져 나올 수 있도록 진솔한 만남을 제공한다.
  3. 전도와 대화는 구분되지만 서로 관련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하지만, 전도가 대화의 목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화는 또한 “헌신된 자들의 상호 만남”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는 것은 대화 안에서 정당한 자리를 갖는다. 더 나아가 진정성 있는 전도는 삶과 행동의 대화라는 맥락에서, 그리고 “대화의 정신” 즉 “존중과 우정의 태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전도는 우리의 가장 깊은 확신을 선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 의해 도전을 받고 경험을 넓히는 것을 포함한다(행 10장).
  4. 특히 서로 다른 신앙인들 사이에 대화는 다종교적 상황 안에서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 인구가 대다수인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소수집단의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공동의 선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창 1 : 26)으로 창조되었다는 인간 존엄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와 신앙의 신봉자들은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다.

전도와 문화

  1. 복음은 특수한 문화적 · 정치적 · 종교적 실재에 참여함을 통해 여러 상황에 뿌리내린다. 복음이 그러한 여러 실재 안에 뿌리를 내리려면,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적 · 상징적 삶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곳에 어떻게 현존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미리 활동하고 계시는 곳이 어디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복음은 더 넓은 상황에 참여하고 대화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2. 선교 역사에서 복음과 식민 세력들이 결탁된 까닭에 서구 기독교를 표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충성심을 판단해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만들어졌다. 경제적 힘이나 문화적 패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도는 복음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소유를 빼앗긴 사람들, 소수자들과 동역관계를 찾아야 하며, 그 약자들의 신학적 자원과 비전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3.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개인의 유일성을 손상시킨다. 바벨(Babel)은 획일성을 강요했던 반면에 오순절에 제자들의 설교는 개인의 특수성과 공동체의 정체성이 손상되지 않고 존중되는 일치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언어로 복음을 들었다.
  4.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비전을 보이시고,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자유, 평화의 증인이 되라고 성령의 권능을 주심으로, 우리 자신의 왕국, 우리 자신의 해방, 우리 자신의 독립(행 1 : 6)이라는 좁은 관심에 서 우리를 불러내신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 자신이나 제도가 아니라 모두에게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며, 자신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빌 2 : 3 ‐ 4 참조). 우리는 한 지배문화의 관점을 가지고 성서의 복잡성을 파악할 수 없다. 문화의 다원성은 우리의 믿음과 상호 이해를 더 깊게 만드는 성령의 선물이다. 가령, 다문화 공동체가 함께 예배드리는 문화 간(intercultural) 신앙 공동체는 문화가 진정성 있게 서로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문화가 복음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복음은 문화우월주의적 개념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하고 사람들의 문화 속에 성육화(肉化)하거 나 뿌리를 내려야 한다. … 우리는 어떤 곳에서 복음이 특정 문화를 도전하는지, 승인하는지, 변혁하는지 더 잘 분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령의 통찰을 구해야 한다.” 생명을 위하여.

VI. 생명의 잔치 : 결론적 확언

  1. 우리는 모든 인류와 창조세계에, 특히 생명의 충만을 고대하는 억압과 고난의 사람들에게 복음선포의 선교를 허락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종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 증언인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눅 14 : 15)로 초대하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는 그 연회를 준비하고 모든 사람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 잔치는 풍요로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창조와 풍작에 대한 경축이다. 그것은 선교의 목적이 되는 온 창조세계의 해방과 화해의 징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이 성명서의 첫 부분에서 제기했던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2. 우리는 하나님 선교의 목적이 생명의 충만함(요 10 : 10)이며 그것이 선교를 분별하는 기준임을 확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충만함이 있는 곳에서, 특히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해방, 깨어진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그리고 온 창조세계가 회복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분별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우리는 여러 문화 안에서 생명을 긍정하는 영들을 분별하고, 생명을 긍정하고 보존하는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도록 도전받고 있다. 우리는 또한 죽음의 세력들과 생명 부정이 경험되는 곳에서 악령들을 분별하고 대적한다.
  3. 우리는 선교가 하나님의 창조행위로부터 시작되고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재창조 가운데 지속되고 있음을 확언한다. 오순절에 불의 혀와 같이 부어진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드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셨던 성령은 우리를 감동시켜 자기를 비우고 십자가를 지는 삶의 스타일로 이끄시며, 우리가 말씀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사람들과 동행하신다. 진리의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이끄시고 권능을 주사 귀신의 권세를 물리치고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게 하신다. 우리는 구속받은 공동체로서 다른 사람들과 생명수를 나누며 온 창조를 치유하고, 화해시키고, 갱신하기 위하여 일치의 성령을 찾는다.
  4. 우리는 영성이 선교적 활동력의 근원이며 성령 안에서 선교는 변혁적임을 확언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와 영성과 창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관점을 재조정하려고 노력한다. 예전과 예배로부터 흘러나오는 선교 영성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와 더 넓은 창조세계를 재연결한다. 우리는 우리가 선교에 참여하고, 창조세계 안에 존재하고,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은 상호 변혁적이기 때문에 함께 엮여 있어야 한다고 이해한다. 창조와 함께 시작된 선교는 모든 차원에서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경축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선교가 온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는 것임을 확언한다. “땅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 : 1).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 인간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창조세계의 온전성을 보살피는 책임이 있다. 지속적인 자연파괴를 초래하는 과도한 탐욕과 무절제한 소비는 중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 구원이 온 창조세계의 갱신에서 분리된다고 선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목적을 넘어서 하나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하나님 선교는 모든 생명을 향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선교 방법으로 그것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회개와 용서를 위해 기도하지만 또한 지금 행동해야 한다. 선교는 창조세계를 그 중심에 품고 있다.
  6. 우리는 오늘날 다방향적이고 많은 양상을 지닌 선교운동들이 지구 남반구와 동쪽으로부터 출현하고 있음을 확언한다. 기독교의 지구 인구 비중이 남반구와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은 이 지역들의 상황, 문화, 영성에 근거한 선교학적 표현들을 탐구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상호 우애와 동반자 관계를 더 발전시켜야 하고, 선교와 에큐메니칼 운동 안에 상호 의존성을 확언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적 실천은 고난받는 사람들과의 연대 및 자연과의 조화를 보여야 한다. 전도는 자기 비움의 겸손으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또한 다른 문화와 신앙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또한 전도는 이 지형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가치와 모순되는 억압과 비인간화의 구조와 문화에 맞서는 것을 포함한다.
  7. 우리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선교의 대리자들이며 만유를 위한 생명의 충만을 강조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확언한다. 사회에서 주변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 선교의 주요 동역자들이다. 주변부화되고, 억압과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고, 무엇이 그들의 위험한 삶에 나쁜 소식인지를 구별하는 특별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살림 선교에 헌신하려면, 무엇이 생명을 긍정하는 것이고 무엇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주변부화된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한다. 우리는 주변부화된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정의와 연대와 포용성은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를 표현하는 핵심 용어이다.
  8.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가 모든 사람과 자연을 위한 사랑과 정의의 가치에 기초해 있으며, 변혁적 선교는 자유시장 경제 안에 있는 우상숭배에 저항하는 것임을 확언한다. 경제 지구화는 사실상 생명의 하나님을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신, 맘몬으로 대체했다. 그것은 부당한 부의 축적과 번영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는 그러한 우상숭배적인 비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문화적이 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선교는 생명, 정의, 평화의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사람과 자연에 불행과 고난을 가져오는 이러한 거짓 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는 탐욕의 경제를 규탄하고 사랑과 나눔과 정의의 신성한 경제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좋은 소식이고, 사랑과 겸손의 성령 안에서 선포되어야 한다고 확언한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와 복음을 전하는 방법 안에 성육신, 십자가, 부활의 중심성이 있음을 확언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제도가 아니라 늘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전도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 교회의 예언자적 소리는 들려야 할 그때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설득, 감동, 확신을 가지고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 방법을 갱신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10. 우리는 생명을 위한 대화와 협력이 선교와 전도에서 필수적이라고 확언한다. 진정성 있는 전도는 하나님의 형상인 모든 인간을 위하여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존중함으로 이루어진다. 폭력적인 수단, 경제적인 이익 제공 혹은 권력 남용을 통해 이루어진 개종은 복음의 메시지와 반대된다. 전도할 때에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중과 신뢰 관계를 성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각각 혹은 모든(each and every)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며, 복음은 특정 단체에 의해 소유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교지로 하나님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행17 : 23 ‐ 28). 성령과 연합한 우리는 생명을 향해 함께 일하기 위해서 문화적 · 종교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교하기 위해 교회를 움직이시며 권능을 주심을 확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선교를 계속 수행할 때에 역동적이고 변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 기독교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증언이 일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하면서 함께 여행하고, 사도들의 선교를 지속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이 사실은 실천적인 면에서 교회와 선교가 일치해야 하며, 서로 다른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생명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12.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요 10 : 10)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사 65 : 17)라고 하나님의 통치의 비전을 확증하시는 성령을 통해 온 창조물을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신다. 우리는 겸손과 소망 가운데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한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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